전라좌수영 본영

전남 여수시 군자동 일대에 있었던 전라좌수영 본영이다.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이 심했던 남해안 전라도와 경상도에는 수군절도사가 상주하는 본영을 각각 2곳을 두었는데 전라좌수영은 전라도 서쪽을 담당하는 수영이었다. 전라좌수영은 조선초 성종 때(1479) 순천 오동포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1895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수영에는 둘레 1.13 km의 수영성이 설치되었는데 현재는 성벽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내에는 80여동의 건물, 2024호의 민가 등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객사 건물이었던 진남관(국보 304호)만이 남아 있다.

전라좌수영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수군을 이끌면서 왜군을 상대로 해전에서 승리를 이끌면서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임하면서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이 되기도 하였다. 전라좌수영이 있었던 여수에는 거북선을 최초로 만든 선소(사적392호), 충무공을 추모하며 세운 타루비(보물 1288호), 사당인 충민사(사적381호), 전라좌수영을 지원했던 승병들의 머물렀던 흥국사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구도심에 남아 있는 옛 전라좌수영. 객사였던 진남관(국보 304호)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전라좌수영성 모형(유물전시관 내 전시). 여수 구항 일대 둘레 1.3 km의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정문 앞에는 함선들이 정박하는 선착장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내부에는 80여 동의 관아 건물과 2,000여 호의 민가가 들어서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앞 바다에서 보이는 전라좌수영성 일대. 객사건물인 진남관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수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진남관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전라좌수영성의 규모
전라좌수영성의 설치 당시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종실록』에 의하면 성종 21년 10월에 전라좌수영성을 수축하였는데, 당시의 규모를 둘레 3,634자라 했다. 또 1847년 기록인 『호좌수영지』에서는 성주위가 3,158포척이라 했다. 성종년간의 규모를 당시 영조척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약 1.13 km가 되는데, 현재 성곽의 터로 실측된 1.74 km와 약간의 차이만 있다. 이는 이후 설치되는 치나 오성의 치수 산정 또는 측량방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전라좌수영 관아 문루인 망해루.

OLYMPUS DIGITAL CAMERA망해루에서 옛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길. 망해루에서 바다까지는 250 여 m 정도의 짧은 거리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전라좌수영 객사건물이었던 진남관(국보 304호), 앞면 15칸, 옆면 5칸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궐패를 모시는 객사이지만 전라좌수영 소속 지휘관들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수군훈련을 지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가운데 정청부분. 다른 지방 관아 객사와는 달리 좌.우익랑을 두지 않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내부. 벽체를 두지 않고 내부는 넓은 마루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여수 앞바다. 지금은 건물로 막혀 있지만 선박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라좌수영 본영, 여수
여수가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579년(성종 10) 순천 내례포의 수군 만호영을 설치하면서 기존에 있던 해남의 수영을 ‘전라우도수영’, 순천의 신설 수영을 ‘전라좌도수영’이라고 하면서 부터다. 1593년부터 1601년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기도 했던 여수는 조선시대 400년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서 구국의 성지로 전승의 사명을 다한 곳이며, 지금까지 이순신장군의 기백과 충정 정신이 도도히 살아 숨쉬는 역사의 고장이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진남관 아래 전라좌수영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전시관.

OLYMPUS DIGITAL CAMERA난중일기(국보 76호, 복제품), 난중일기는 이순신장군이 임진란(1592~1598) 7년 동안 싸움터에서 손수 쓴 진중일기로 정조 때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간첩(국보 76호, 복제품), 이순신장군이 친척들에게 친필로 보낸 편지를 수집하여 만든 책이다. 크기는 세로 33 cm, 가로 44 cm로 글씨는 한문 초서로 쓰여 있다.

충무공 이순신과 여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이곳 여수에 부임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여수는 거북선을 처음으로 출정시킨 곳인데, 1593년(선조 26) 8월부터 1601년(선조 34년) 3월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기도 하였다. 이순신의 수군이 옥포, 합포, 당항포, 율포, 노량, 명량, 한산도 등에서 거둔 승리는 조선이 왜적에게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수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발자취가 곳곳에 문화유적으로 남아 있다. 거북선을 최초로 만든 선소, 공의 공적을 새긴 통제이공수군대첩비, 공을 추모하여 세운 눈물의 비석 ‘타루비’, 국내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사당 ‘충민사’가 있다. 또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 선 승려들의 흥국사도 있으며, 송현마을에는 효성이 지극했던 공이 전쟁중에 어머니 변씨를 모셔와 보살핀 곳도 있다.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다’라는 이순신의 글을 되새기게 하는 이곳 여수는 임진왜란 때 위태로운 나라를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임명장,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 부하장교에게 직책을 수여하는 명령서

OLYMPUS DIGITAL CAMERA좌수영 수군의 서본, 전라좌도 수군이 쓰던 글씨교본

전라좌수영 여수와 임진왜란 
여수는 한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왜구의 침략경로에 노출되어 있어 왜구가 침략하기 시작한 고려 말부터 수군기지화 되다가 진례만호와 내례만호를 거쳐 성종 10년(1479)에 드디어 전라좌수영으로 승격되어 고종 32년(1895) 혁파되기까지 417년 동안 남해안 방어의 주력기지로 국방상 중요한 임무를 다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여수의 좌수영수군은 이순신장군과 함께 바다의 모든 왜적을 격파하였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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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의 톱

여수 전라좌수영 31-20100911여수 선소 유적(사적 392호),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전라좌수영 조선소 유적이다. 이곳에서 거북선을 비롯한 함선들을 건조하였다.

여수와 거북선
임진란이 일어나기 1년 2개월 전 이순신장군이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 부임하여 선소에서 거북선을 건조하는 한편 갖가지 병기를 시험하는 등 마치 왜적의 침입을 미리 알고 있는 듯 대비하였다.
난중일기: 인전년 3월 27일 <일찍 조반을 먹고 배를 타고 소포로 나가 쇠사슬을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여 종일 기둥나무 세우는 것을 보고 겸하여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을 시험하였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철쇄방비시설. 전라좌수영 동쪽과 돌산도 사이의 해협에 선박의 통행을 막기 위해 방어시설이 설치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철쇄방비시설이 설치되었던 여수 종포와 돌산도 사이의 해협. 광양만을 통해 남해 노량해협으로 연결되는 연안항로의 주요 지점으로 지금은 거북선대교가 세워져 있다.

철쇄방비시설
이 방비시설은 전라좌수영의 동쪽 소포(지금의 종포)에서 건너편 돌산도까지 쇠사슬을 걸쳐 매어 적선의 야간통행을 막는 시설이었다. 우선 긴 쇠사슬의 중간중간에 큰 나무를 꿰어 부표로 사용하고, 이 쇠사슬을 바다에 가로질러 설치한 후 이것이 조류에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수면에 큰 돌을 달아매어 닻으로 사용했다. 『난중일기』에 ‘돌은 신생포(지금의 율촌)에서 떠왔고, 나무는 두산도(지금의 돌산)에서 베어 왔으며, 공은 거의 날마다 이 쇠사슬을 건너 매는 일을 감독했다’고 적혀 있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영.진남관
전라좌수영- 조선시대 남해안 방위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여수에 자리잡고 있던 수군영이다. 1479년(성종10) 처음으로 설치되었고, 1895년(고종32)에 없앴다. 현재 그 모습을 거의 잃은 채 성곽의 극히 일부와 진남관만이 남아 있다. 조선후기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전라좌수영 성안에는 건물 80여 동, 민가 2024호, 우물 9곳, 연못 1곳 등이 있었다고 한다. 봄이면 주변에 매화가 만발하여 매영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삼도수군통제영-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의 수군을 이끌고 경상도 해전에서 여러번 승리를 거두어 1593년(선조 26)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수군을 다스리는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함으로써 전라좌수영이 1601년(선조 34)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었다.
진남관 –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수군의 중심기지였다. 여수지역에서 목재를 조달하여 건축하였으며,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단층 목조건물 중 가장 크다.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여수시청, 201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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