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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해남윤씨 녹우당(사적), 윤선도 고택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녹우당(사적)이다. 윤선도가 살았던 곳으로 잘 알려진 해남윤씨 고택으로 입향조인 윤효정이 연동리 마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 지은 집이다. 원래 있던 집에 윤선도가 효종으로 부터 하사받은 사랑채를 옮겨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한다. 집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마당 한쪽편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으며, 담장 바깥에 윤효정과 윤선도를 모신 사당을 따로 두고 있다.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간주택으로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해남 연동리마을 남아 있는 해남윤씨 고택>

입구에는 녹우당을 상징하는 은행나무 고목이 우뚝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남서향을 하고 있으며, 행랑채 오른쪽에 솟을대문이 있다.

<솟을대문>

<사랑채 마당에서 보이는 솟을대문>

<사랑채>

<사랑채와 마당>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윤선도가 수원에서 옮겨왔다는 사랑채를 볼 수 있다. 앞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차양을 두고 있는데 상류층 주택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녹우당’ 현판>

<사랑채 서까래 아래에 걸려 있는 글씨>

사랑채는 여러개의 방으로 되어 있으며, ‘녹우당’이라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사랑채 왼쪽 마루방>

사랑채 왼쪽편에 툇마루가 없는 문을 볼 수 있는데 넓은 마루방인 것으로 보인다. 그 옆쪽에 안채를 출입하는 문이 있다.

<사랑채 마당에 있는 잘 꾸며진 연못>

<연못 안쪽에 있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행랑채>

<솟을대문 옆쪽에 있는 행랑채>

<옆쪽에서 본 사랑채>

<사랑채 마당과 안채 마당 사이에 공간을 분리해 주는 담장>

<안채>

<안채와 안마당>

담장 안쪽으로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가 있다. 안채는 ‘ㄷ’자 형태로 안마당을 향해 툇마루를 두어 여자들이 일하면서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안채 뒷마당>

대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를 심어 정원을 가꾸고 있다. 안채 마당 한쪽편에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사당은 툇마루를 두고 있는 3칸 규모의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다.

<마당 뒷편 사당>

<사당>

해남윤씨 녹우당, 사적,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녹우당은 해남 윤씨의 고택이다. 윤선도의 4대조부의 효정(어초은, 1467~1543)이 연동에 삶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사랑채는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현종 9년(1668)에 해상운송하여 이곳에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선도(호: 고산, 1587~1671)는 한성부 남부 명례방(현 서울 명동)에서 살다가 중년에 연동으로 내려와 해남 금쇄동과 완도 보길도를 내왕하면서 불후의 시조문학을 남겼다.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을 진산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경역에는 가묘, 어초은사당, 고산사당 등이 있으며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년된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겨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 산중신곡집(보물 482호), 어부사시사집, 노비문권(보물 제483호) 등으이 지정문화재와 3천여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