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 불국사(사적),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사찰

경주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10년(774)에 완공한 사찰이다. 불국사가 처음 창건된 것은 법흥왕대였다고 한다. 그후 경덕왕대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크게 중창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불국사는 쇠락하기는 했지만 조선중기까지 2,000여칸에 이르는 전각이 있었다고 하면, 임진왜란때 왜군이 절에 무기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이후 대웅전을 중심으로 일부 전각들이 중건되기는 했지만 옛모습을 찾지 못하고 쇠락하여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 등 일부 건물만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970년대 발굴.조사를 거쳐 건물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관음전,비로전,경루,회랑 등이 복원되고, 기존의 건물들 또한 크게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토함산 불국사(사적)>

불국사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사찰로 2,000여칸에 이르는 건물이 있었던 최대의 사찰이었다. 불국사는 토함산 아래에 인공적으로 석축을 쌓고 건물을 올려놓고 있다. 불국사의 공간은 크게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공간과 불상들을 모신 불전들로 나눌 수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불교가 한반도에 전파된 이래 대부분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중문,탑,금당,강당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고,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반면에 다른 공간들은 불상을 모신 불전을 중심으로 공간을 형상하고 있다. 오늘날 불국사는 5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석탑이 있는 대웅전 영역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고, 극락전 영역은 아미타불, 비로전 영역은 비로자나불, 관음전 영역은 관음보살 그리고 나한전이 있다. 극락전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금동아미타불좌상(국보), 비로전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창건당시부터 불상을 모셨던 불전을 다수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황룡사를 비롯한 전통적인 사찰과른 다른 불국사만의 공간배치라 할 수 있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불국사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경주 불국사는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하여 774년에 완공하였다. 통일신라 전성기때 세운 사찰로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삼국시대 이래 평지에 세워진 기존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달리 경사진 지형에 인공으로 축대를 쌓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가람배치를 계승함과 동시에 아래쪽에 아마타불을 모신 극락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등 후대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불전 중심의 가람배치도 함께 공존하는 독창적인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가람배치는 후대에 세워진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불국사만의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일주문>

이로 인하여 감동된 바가 있어, 자비의 대원(悲願)이 더 두터워졌다. 이에 현생의 양친을 위해 불국사(佛國寺)를 창건하고, 전세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石佛寺)를 창건하고, 신림(神琳)·표훈(表訓)의 두 성스러운 스님을 청하여 각각 머물게 하고, 거대한 불상을 설치하고, 또 양육한 노고를 갚았으니, 한 몸으로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한 것은 옛날에도 또한 듣기 드물었다. 착하게 베푼 효과로 가히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차 석불(石佛)을 조각하려고 큰 돌 하나를 감실의 뚜껑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돌이 갑자기 셋으로 깨졌다. [대성은] 분노하여 아무렇게나 잠들었다. 밤 중에 천신이 내려와서, 다 만들고는 돌아갔다. 대성은 잠자다가 일어나서 남쪽 고개로 쫓아가, 향나무를 불에 태워 천신에게 바쳤다. 까닭에 그 땅의 이름을 향령(香嶺)이라 하였다. 그 불국사의 사다리(雲梯)와 석탑은 돌과 나무에 새긴 업적이 경주의 여러 사찰 중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삼국유사 권 제5 제9 효선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옛 <향전(鄕傳)>에 기록된 바는 이와 같으니, 절의 기록에 이르길, “경덕왕(景德王)대에 대상(大相) 대성(大城)이 천보(天寶) 10년 신묘(辛卯)에 불국사를 처음 창건하였다. 혜공왕대를 지나, 대력(大歷) 9년 갑인(甲寅)(774년) 12월 2일에 대성이 죽자, 국가가 이를 완성하여 끝마쳤다. 처음에는 유가대덕(瑜伽大德) 항마(降魔)를 청하여 이 절에 머물게 하였고, 그것을 이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고전(古傳)과 같지 않으니,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삼국유사 권 제5 제9 효선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불국사는 궁궐과 마찬가지로 바깥세상과 부처님의 세상을 구분해주는 개천이 흐르고, 돌다리를 건너서 사찰로 들어간다. 지금의 다리는 70년대 불국사를 대대적으로 중건.복원하면서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통일신라시대에도 비슷한 규모의 다리를 세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아래에는 토함산에서 흘러내린 개천이 모여 연못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천왕문.>

OLYMPUS DIGITAL CAMERAOLYMPUS DIGITAL CAMERA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에 또 하나의 다리가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당간지주. 화려하고 섬세하지는 않으나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불국사 석조(보물)는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직사각형을 하고 있으며,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고 있다. 석조는 부처님의 세상인 사찰로 들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를 갖는 곳으로 이슬람사원이나 카톨릭 성당입구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석조(보물) >

대웅전 영역

불국사는 크게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 있는 대웅전 영역과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등 부처님의 불상을 모신 불전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삼층석탑과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 영역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대부분의 평지사찰에서 보여주고 있는 중문, 탑, 금당(불전), 강당이 일렬로 배치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불국사가 토함산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고 사찰을 조성했지만, 기존의 사찰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불국사에는 천왕문이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가람배치로 볼 때 자하문이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다. 자하문은 2층 계단 다리인 청운교와 백운교를 건너서 오르게 되어 있으며, 다리 아래는 냇물이 흐르도록 설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운교 및 백운교는 2단의 계단으로 된 다리이다. 불국사는 경사진 지형에 인공으로 석축을 쌓고 불전을 조성했는데, 그 중심이 되는 대웅전 영역은 의도적으로 석축을 높게 쌓아 부처님의 세계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고 있다. 33계단으로 이루어진 청운교.백운교는 다리의 형식으로 한 것은 부처의 세계인 대웅전 경내와 속세를 가르는 물이 다리 아래로 흐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

OLYMPUS DIGITAL CAMERA <경주 불국사를 대표하는 장면> 

자하문은 불국사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 영역을 출입하는 문으로 전통 가람배치에서 중문에 해당한다. 황룡사를 비롯한 기존의 평지 사찰들에서 중문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불국사는 의도적으로 축대를 높게 쌓아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대웅전 영역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한다.  현재의 자하문은 조선후기 사찰건축을 참조하여 복원한 것이지만 청운교.백운교, 석축, 회랑 등과 함께 원래의 가람배치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과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 당나라 장안의 궁궐 건축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자하문>

 

자하문
750년경에 세워졌다. 그후, 여러 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1966년 크게 보수하였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라 자하문을 들어서면 그 곳으로부터 대웅전을 비롯한 불국토가 전개된다. 이름은 자하(붉은노을)라고 한 것은 부처님의 광명을 형용한 것이다. (안내문, 불국사, 2011년)

불국사 대웅전 영역은 회랑으로 둘러져 있으며, 중문 양쪽으로 범영루와 자경루를 두고 있다. 범종, 목어, 법고 등 부처님의 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범음구를 달아 놓는 누각으로 하늘로 비상하는 새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다른 사찰의 범종각이나 일반적인 누각에 비해서 높이가 높고 날렵하게 지어졌다. 폐허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옛 불국사 사진에서 자하문과 함께 웅장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궁궐 건축에서 망루에 해당하는 궐(闕)에 해당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범영루>

범영루
지금은 법고가 있으나 원래는 범종각임. 751년에 세워졌다.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건을 거쳐 1973년, 불국사 복원 때 옛 모습대로 다시 세웠다. 기단의 돌기둥은 수미산을 본뜬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수미범종각이라고도 한다. (안내문, 불국사, 2011년)

석축은 1층에는 큰돌을, 2층에는 작은 돌로, 그 사이에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쌓고 있다. 기둥과 난간은 화강석으로 만들었는데 마치 목조건축물을 보는 듯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영루 석축>

OLYMPUS DIGITAL CAMERA<범영루 누각>

OLYMPUS DIGITAL CAMERA<범영루에는 원래 범종이 걸려 있어 수미범종각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지금은 법고가 있다.>

불국사의 가람배치는 계단을 걸어오르는 중문, 대웅전 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 양쪽 모서리에 배치된 범영루와 자경루 등은 지금도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이다. 후대에 지어진 큰 사찰에서도 쉽게 따라하기 힘든 구조라 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웅전 영역 회랑 동남쪽 모서리에 위치한 자경루. >

자하문을 들어서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석가탑이라 불리는 삼층석탑과 다보탑이 있다. 2개의 석탑 안쪽에는 지금은 조선후기 불전의 양식을 하고 있는 대웅전이 있고, 그 앞에 석등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 경내는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고, 중앙에 금당이 있는데 이는 궁궐 정전영역의 건물배치와 같다. 이는 로마시대 공공건물이나 신전 등에서 유래한 바실리카양식으로 로마의 바티칸대성당이나 베네치아의 대성당, 중국 자금성이나 취푸 공묘 등에서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대웅전 영역>

불국사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2개의 탑을 연상시키는 대웅전 경내에 우뚝 서 있는 삼층섣탑과 다보탑이다. 보통 쌍탑이 세워진 경우 비슷한 형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불국사는 전혀 다른 방식의 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나란히 서 있는 두개의 탑 중 서쪽편에 있는 석가탑은 현세의 석가모니불을 상징하고 있으며, 다보탑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증명하는 다보여래를 상징한다고 한다. 삼층석탑은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 다보탑은 크고 작은 기둥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석탑이다. 전란등으로 불국사가 타버렸을 때도 석가탑과 다보탑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오늘날까지 불국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불국사 마당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면 그림,사진,동전 속에서 볼때의 약간 왜소함에 비해 실물의 크기에 감탄을 하게된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삼층석탑(국보)과 다보탑(국보)>

불국사 삼층석탑(국보)은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를 상징하기 때문에 석가탑이라 불렸으며, 아사달의 전설이 담겨 있어 무영탑(그림자가 보이지 않는탑)이라고도 불렸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 이어져온 통일신라 삼층석탑을 대표하는 석탑이다.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올려놓고 있는 이 석탑은 간결하면소 빼어난 조형미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상륜부는 없어졌는데,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을 모방해서 복원하여 전체적으로는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삼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삼층석탑에서 사라함에서 출토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SANYO DIGITAL CAMERA<사리함>

불국사 다보탑(국보)은 일반적인 석탑과 그 형태가 완전히 다른 특수형 석탑을 대표하는 석탑으로 정식 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이라 한다. 이는 석가여래의 진리를 다보여래가 증명한다는 연유하며, 석재로 목조건축물을 세우듯 화려함을 특징으로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다보탑(국보)>

OLYMPUS DIGITAL CAMERA<다보탑 4면을 장식하던 사자상 중에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사자상>

불국사 대웅전(보물)은 불국사를 창건할 때 금당이 있던 기단 위에 조선시대에 중건한 불전이다. 아미타여래불을 모신 극락전이나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과는 달리 창건 당시 어떤 부처님을 모셨는지는 설명이 없다. 황룡사나 일본 동대사의 금당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대웅전과 회랑들과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복궁 정전을 연상시키는 공간배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대웅전(보물)>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 대웅은 석가모니불의 덕이 큰 것을 표현하는 덕호, 681년에 창건되었다. 여러 차례 중수 중건을 거쳐 1765년, 창건 당시의 기단 위에 중건되었다. 조선후기 불전건축의 대표작이다. (안내문, 불국사,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
<대웅전 앞에 세워진 석등>

불국사 이전 주요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요소였던 강당건물인 무설전이다. 앞면 8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조선후기 양식의 건물이지만, 원래 건물 구조를 바탕으로 복원하였고, 현재남아 있는 여러 절터에서 비슷한 규모의 건물터를 볼 수 있기때문에 원형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강당은 신도들을 모아놓고 부처님의 설법을 강론하는 장소로 이곳에서 의상대사가 설법을 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무설전>

무설전
경론을 강설하는 강당, 말로써 경론을 강설하는 곳임에도 무설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 수단으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언도도단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이다. 670년경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최초로 강의를 하였다. 창건이후 여러차례 중건.중수를 거쳐 1973년 복원하였다. 건축양식은 조선후기에 속한다. (안내문, 불국사, 2011년)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도 불국사에서만 볼 수 있는 사찰 경내를 둘러싸고 있는 회랑이다. 회랑은 로마시대 신전이나 공공건축물인 바실리카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파되면서 같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을 모신 불전과 국왕을 상징하는 궁궐 정전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대웅전 영역 회랑>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으로 연결되는 회랑>

불국사의 불전들

불국사는 중문, 탑, 금당, 강당으로 이루어지는 이전의 사찰들과는 달리 다양한 신자들의 바램을 충족시킬 수 있는 불전들을 따로 세워 놓고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초기에 가장 많은 숭배를 받았던 아미타불을 모신 불전인 극락전이 대웅전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뒷편에는 초석만 남아 있는 법화전지, 화엄불교에서 중요시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많은 서민들이 따르는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극락전은 대웅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웅전 영역과 마찬가지로 인공적으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불전을 조성하고 있는데, 대웅전에 비해 낮게 축대를 쌓아서 상대적인 위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극락전은 대웅전과 별개로 안양문을 통해서 출입을 하며, 역시 국보로 지정된 연화교와 칠보고를 올라서 경내로 들어선다. 극락전이 있는 경내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은 없지만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조선중기에 중건된 극락전에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전 출입문인 안양문. 연화교와 칠보교 계단을 걸어올라 경내로 들어선다.>

안양문
750년경에 세워졌다. 그 후, 여러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1973년 크게 보수하였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 이 문에 들어서면 그곳으로부터 극락전을 비롯하여 극락정토가 전개된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안내문, 불국사, 2011년)

안양문을 오르는 다리인 연화교.칠보교(국보)이다. 청운교.백운교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석축의 높이가 낮아 완만하게 처리되었다. 연화교는 지금은 닳아 보이지 않지만 돌계단에 연꽃잎을 새겨 놓았다. 창건당시 이 다리를 오르면서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문을 오르는 다리인 연화교.칠보교(국보)>

극락전 영역은 인공적으로 석축을 쌓아서 조성하였다. 석축은 잘다듬은 긴 화강석이 목재처럼 구조물 역할을 하고 중간에 큰돌을 채워 넣었다. 연화교.칠보교와 마찬가지로 2층으로 석축을 쌓고 있다. 석축 위 회랑 바깥쪽에는 돌난간을 설치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전 영역 석축>

안양문을 들어서면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을 볼 수 있다.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석등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최근에 유명해진 돼지상을 세워놓고 있다. 극락전은 원래 불전이 있던 기단 위에 조선후기 불전을 중건하였다.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상당히 크게 지었는데 기단에 비해 불전 건물을 크게 지어 균형감이 없어 보인다. 극락전에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이 모셔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극락전>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극락전>

극락전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 국보 27호인 금동아미타여래좌상(8세기)이 모셔져 있다. 751년에 건립되었다. 그 후, 여러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1750년 창건 당시의 기단과 초석 위에 중건하였다. 건축양식은 조선후기에 속한다. (안내문, 불국사,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TV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되어 크게 유명해진 극락전 현판 뒤 돼지상>

안양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만날수 있는 것이 극락전 복돼지상이다.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누가나 만져볼 수 있게 하여, 불국사 관광의 즐거움을 주는 명소가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 <안양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만날수 있는 것이 극락전 복돼지상>

SANYO DIGITAL CAMERA <복돼지를 만지고 있는 여학생들>

SANYO DIGITAL CAMERA<2009년 초여름>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전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전에서 대웅전이 있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두 영역간 높이 차이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극락전 서쪽 출입문>

강당인 무설전 서쪽편 출입문으로 나오면 비로전을 비롯하여 여러 불전들과 연결된다. 출입문을 나서면 정면에 법화전 건물터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설전 옆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 <초석만 남아 있는 법화전터>

불국사 강당인 무설전 뒷편에는 석가모니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이 있다. 이 불전들 또한 축대를 쌓아서 조성했는데, 나한전이 낮고, 관음전이 높은 곳에 조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설전 뒷편 공간>

현재의 불전은 70년대 불국사를 크게 중건할 때 고려시대 양식으로 지었다고 하며, 불전에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인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이 모셔져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에 주심포양식을 쓰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비로전>

건물 안으로 비로자나불상이 보인다. 비로전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26호)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은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을 뜻하는데, 화엄종에서는 본존불로 모시고 있는 부처이다.

SANYO DIGITAL CAMERA<비로전>

SANYO DIGITAL CAMERA<비로전 동쪽편으로 관음전이 보인다.>

불국사 비로전 옆에 자리잡고 있는 불국사 사리탑(보물)이다. 고려시대에 만든 승려의 사리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어 우에노 공원을 장식하고 있다가 1933년 반환된 것이라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 <불국사 사리탑>

불국사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관음전은 큰 돌로 축대를 상당히 높게 쌓고 그 위에 불전을 조성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 <관음전을 오르는 계단>

SANYO DIGITAL CAMERA<관음전 입구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웅전 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

관음전은 70년대에 중수한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이다. 사모정형태의 지붕을 하고 있으며, 꼭대기에 절병통을 올려 놓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고려시대 건물형태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 있는 후불탱화 천수관음도가 유명하다.

SANYO DIGITAL CAMERA<관음전>

SANYO DIGITAL CAMERA<비로전 서쪽편에 위치한 나한전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불국사 나한전>

불국사가 다른 사찰과 다른 특징으로 인공적으로 석축을 쌓아 불전을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석축으로 화강암석재로 기둥과 보를 만들고 그 안에 자연석을 채워서 석축을 만들고 있는데, 대웅전 석축은 1단, 극락전 석축은 2단으로 만들고 있다. 불국사의 불전들은 대부분 조선후기에 중건되었는데 비해 석축을 비롯한 석조구조물은 통일신라시대 김대성이 절을 창건할 때 부터 존재해왔다. 불국사 석축은 최근 보물로 지정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불국사 석축(보물)>

OLYMPUS DIGITAL CAMERA<2층으로 된 극락전 서쪽편 가구식 석축>

경주 불국사, 사적 502호, 경주시 불국로
불국사는 석굴암과 같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하여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때 완공하였다. 토함산 서쪽 중턱의 경사진 곳에 자리한 불국사는 심오한 불교사상과 천재 예술가의 혼이 독특한 형태로 표현되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기념비적인 예술품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 놓은 것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불국사의 건축구조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하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 범영루, 자경루, 다보탑과 석가탑, 무설전 등이 있는 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칠보교, 연화교, 안양문 등이 있는 구역이다. 불국사 전면에서 바라볼때 장대하고 독특한 석조구조는 창건당시 8세기 유물이고 그 위의 목조건물은 병화로 소실되어 18세기에 중창한 것이며, 회랑은 196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불국사의 석조 구조는 길고 짧은 장대석, 아치석, 둥글게 조출된 기둥석, 난간석 등 잘 다듬은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화려하게 구성되었는데 특히 연화교와 칠보교의 정교하게 잘 다듬은 돌기둥과 둥근 돌난간은 그 정교함, 장엄함과 부드러움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불국사의 높이 8.2 m의 삼층석탑인 석가탑은 각 부분의 비례와 전체의 균형이 알맞아 간결하고 장중한 멋이 있으며, 높이 10.4 m의 다보탑은 정사각형 기단위에 여러가지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를 목재건축처럼 짜맞추었는데 복잡하고 화려한 장엄미, 독특한 구조와 독창적인 표현법은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불국사는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불국사내 주요 문화재로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비로자나불(국보 제26호)등이 있으며,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안내문, 불국사, 2011년)

<출처>

  1. 답사여행의 길잡이 경주, 한국문화유산답사회.
  2.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2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4. 삼국유사 권 제5 제9 효선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