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30호), 가장 오래된 신라 석탑

경북 경주시 구황동 분황사 절터에 남아 있는 모전석탑(국보 30호)이다.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서 쌓아 모전석탑으로  삼국시대 선덕여왕대에 세워졌다.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나 통일신라의 삼층석탑 등이 화강석을 이용해서 목탑처럼 쌓은 것이라면, 분황사 모전석탑은 벽돌로 쌓은 전탑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1층 몸돌에는 4면에 감실을 만들고 입구에 인왕상을 새겨 놓고 있다. 이 인왕상은 이 석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인데 조각상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7세기 신라의 조각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단부 모서리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사자상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모습>

석탑은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려놓고 있다. 1층 몸돌은 큰데 비해 2층부터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하고 있다. 7층인지 9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전체 몸돌이 남아 있지 않아 지금 남아 있는 모습은 불균형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남쪽>

OLYMPUS DIGITAL CAMERA<동남쪽>

OLYMPUS DIGITAL CAMERA<북서쪽>

SANYO DIGITAL CAMERA<2009년 가을>

OLYMPUS DIGITAL CAMERA< 2005년 분황사 모전석탑>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1층 몸돌이다.  4면에 감실을 만들고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라 불리는 인왕상을 조각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1층>

전탑처럼 만든 탑신은 원래는 7층 또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3층만 남아 있어 불안정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지붕돌>

4면에 출입문을 만들어 놓고 금강역사라 불리는 인왕상이 새겨 있으며, 모서리 4곳에는 사자상이 올려져 있다. 매우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 석탑을 조성했던 7세기의 조각 수준이 상당히 높았고,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지금도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1915년 이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사라갖춤과 각종 공양물들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1층몸돌 감실에 새겨진 인왕상(북쪽면)>

OLYMPUS DIGITAL CAMERA<동쪽면 감실과 인왕상>

OLYMPUS DIGITAL CAMERA<남쪽면 감실과 인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서쪽면 감실과 인왕상>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모서리에 세워진 사자상(북동쪽).>

OLYMPUS DIGITAL CAMERA<사자상(북서쪽)>

OLYMPUS DIGITAL CAMERA<사자상(남서쪽)>

OLYMPUS DIGITAL CAMERA<사자상(남동쪽)>

분황사 모전석탑, 국보 30호, 경북 경주시 구황동
이 석탑은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안산암(安山岩)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摸塼石塔)이다. 기단의 규모나 탑의 형태로 보아 7층이나 9층이었을 것을 추정된다. 1915년 일본인이 허물어진 것을 해체.수리하였다. 1층 몸체돌의 사방에는 쌍여닫이 돌문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이 있고, 감실 양쪽으로 불법(佛法)을 지키는 인왕상(仁王像)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자연석으로 된 기단 위에는 네마리의 석사자(石獅子)를 배치하였다. 탑에서 나온 돌 사리함(舍利函)을 배치하였다. 탑에서 나온 돌 사리함에는 여러가지 구슬, 가위, 금.은바늘과 은합, 숭령통보(崇嶺通寶), 상평오사(常平五銖) 등이 들어 있어, 고려 숙종.예종 연간에 해체.수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09년)

이 석탑은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수리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9층석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리를 하면서 현재는 3층만 남아 있다. 수리과정에서 사리갖춤과 각종 공양물들이 발견되었다. 사리는 비단에 싸여 은합 안에 있었으며, 이밖에도 여러 공양물들이 있었는데 그중 바늘.가위.집게 등은 분황사 창건을 발원했던 선덕여왕과 관련을 짓기도 한다. 또한 석탑안에는 북제 동전인 상평오수전과 북송 동전인 송녕중보가 같이 발견되어 고려시대에도 석탑을 해체.수리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정, 향유병, 장신구>

OLYMPUS DIGITAL CAMERA<선덕여왕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는 바늘, 바늘통, 가위, 쪽집게>

OLYMPUS DIGITAL CAMERA<일본 오키나와가 원산지인 조개>

OLYMPUS DIGITAL CAMERA<구슬.옥.수정>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장식판>

중국 북제(550~577년) 때 사용한 동전인 상평오수전과 중국 북송의 동전(1102~1106년 사용) 숭녕중보가 발견되었는데, 여러 시기에 걸쳐서 석탑이 해체.수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평오수전과 중국 북송의 동전(1102~1106년 사용) 숭녕중보>

분황사석탑 사리갖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634년
이 것들은 1915년 분황사 모전석탑을 수리할 당시 발견되었던 석탑 속에 있던 사리갖춤과 각종 공양물입니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34년에 조성된 절로, 이 사리갖춤이 있던 모전석탑과 역시 같은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리는 비단에 싸여 은합 안에 있었으며, 이 밖에도 수정.금바늘.바늘통.가위.집게.조개 등의 공양품도 함께 납입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바늘, 바늘통, 가위, 집게 등이 있어, 분황사의 발원자인 선덕여왕과 이 사리갖춤을 관련짓기도 합니다. 분황사 석탑은 고려시대 때에도 한번 수리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북송 때의 동전인 송녕중보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0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분황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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