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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향교, 고양군에서 설치했던 중등교육기관

옛 고양군(高陽郡) 관아에서 운영했던 조선시대 중동교육기관인 고양향교(高陽鄕校)이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숙종대에 처음 지어졌으며, 그 이후의 내력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강학공간인 앞쪽 자리잡고, 뒷편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는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대성전을 제외한 대부분 건물들이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최근에 새로 지었다. 향교의 규모는 크지 않으며 제사기능만 남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향교의 형태를 하고 있다.

<고양 고양향교>

조선시대 고양군 읍치였던 고양시 고양동에 남아 있는 고양향교이다. 강학공간을 앞에, 제향공간을 뒤에 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홍살문>

<외삼문>

<강학공간의 중심건물인 명륜당>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중건하였다.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경기지역 향교 건물 강당 중에서는 큰 편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두고 있다.

<유생들이 머물렀던 기숙사인 동재>

<맞은편 서재>

<제향공간>

<전사청>

고양군(高陽郡)은 조선 태종대에 고봉현과 덕양현을 합쳐 고양현을 설치한데 기원하며, 1471년 고양군으로 승격하였다. 한양도성 서북쪽을 포함하고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 고양군과 서울 은평, 서대문과 마포지역 일부를 포함한다. 관할지역은 그리 넓지 않지만 서오릉, 서삼릉 등 능원(陵園)들이 관내에 많고,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던 벽제관이 관내에 있어 정치적으로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양군 읍치(邑治)에는 조선시대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마지막으로 예를 갖추면서 숙박을 하던 고양군 역관(驛館) 겸 객사(客舍)인 벽제관(碧蹄館) 옛터가 남아 있다.

<벽제관지(사적)>

조선시대 고양군 관아가 있었던 고양시 고양동 일대. 관아 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고, 고양군 객사였던 벽제관 건물터가 남아 있다. 벽제관은 한양에서 중국으로 가는 사행길에서 첫번째로 묵어가는 숙소이자, 중국 사신이 한양에 입성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물면서 예를 갖추는 곳이었다. 조선시대 관아 객사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고양향교(高陽鄕校),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때 처음 지었으며, 이후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명륜당, 전사청, 외삼문은 1984년에 새로 만들었고, 그 외 건물들은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고 한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사 공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앞쪽에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으며,뒤쪽에는 대성전과 동무·서무, 전사청이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전사청은 서무 뒤쪽에 자리하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교관이 머물던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