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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공민당 신당, 공민왕과 노국공주 영정이 모셔진 사당

서울 종묘의 망묘루(望廟樓) 안쪽에는 고려 31대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와 함께 창건된 공민왕 신당(恭愍王 神堂)이 있다. 신당 내부에는 특이하게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함께 있는 영정이 가운데 있고 벽에는 준마도가 걸려 있다. 이 신당은 태조가 종묘를 창건할 때 같이 세웠다고 한다. 앞면 1칸에 영정을 모신 작은 건물로 임진왜란때 종묘와 함께 불타버린 것을 중건한 것이다. 공민당 신당이 뜻하는 의미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노국공주와 같이 있는 영정이 봉안되고 또한 종묘에 공민왕 신당이 있다는 것은 태조 이성계의 동시대에 살았던 공민왕에 대한 평가가 보여주고 있다.

<종묘 망묘루 안쪽에 위치한 공민왕 신당>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그려진 영정이 모셔져 있다. 종묘에 비해서 작은 규모이지만 태조가 종묘를 창건할 때 세웠던 것으로 후손들이 그 유지를 받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민당 신당 내부>

중앙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나란히 있는 영정이 있고, 왼쪽에는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대렵도풍의 그림이 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그려진 영정>

<왼쪽편에 걸려 있는 대렵도풍의 그림>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이다.


<공민왕 부부의 초상화, 조선, 복제품>

고려 31대 공민왕과 원나라 출신 왕비 노국대장공주 부부의 초상화이다. 무신도의 색채가 짙은 이 그림은 누가 언제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림에서 공민왕은 복두를 쓰고 둥근 깃에 소매가 넓은 단령포 차림이다. 노국대장공주는 화려한 관과 웅장한 소매 폭, 길게 늘어뜨린 치마 등에서 왕비의 위엄이 느껴진다. <출처:중앙박물관>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사냥 그림, 천산대렵도, 고려 14세기>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으로, 천산에서의 수렵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곤륜산의 북쪽 자락인 음산에서 사냥 모습을 표현하였다는 뜻에서 ‘음산대렵도’라고도 한다. 원래의 그림이 세 개로 분리된 것 중의 하나로서, 낡고 훼손되어 상세한 필법을 알기는 어렵다. <출처:중앙박물관>

<공민왕이 쓴 안동 영호루 현판 글씨>

공민당 신당 (恭愍王 神堂)
고려 제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정식이름은 ‘고려공민왕영정봉안지당(高麗恭愍王影幀奉安之堂)’이다. 공민왕은 밖으로 원나라를 물리쳐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고, 안으로 개혁 정치를 폈으며, 개인으로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임금이었다.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고 전하는 말 그림도 사당 안에 있다. 조선 왕조의 최고 사당인 종묘에 고려의 왕을 모셨다는 점이 특이하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