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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재궁, 국왕과 세자가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종묘 정전 동남쪽에 위치한 재궁(齋宮)은 국왕이 세자와 함께 목욕재계를 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다. 재궁은 북쪽에 국왕이 머물던 어재실(御齋室), 동쪽에는 세자재실(世子齋室), 서쪽에는 어목욕청(御沐浴廳)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사 하루전부터 국왕과 세자는 이 곳에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정전의 동문을 통해서 들어간다.

재궁은 태조가 종묘를 처음 창건할 때부터 5칸 규모로 지어졌으며, 정전의 증측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왕릉의 재실과는 그 격을 달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국왕의 입장에서 종묘에서 제를 지낸다는 것은 아주 번거러운 행사이자, 국왕의 권위를 높이고, 신하의 충성을 맹세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종묘 재궁>

망묘루와 향대청을 지나면 종묘제례때 국왕이 머물면서 목욕재계를 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재궁으로 이어지는 어도(御道)>

종묘 정문인 외대문에서 재궁까지는 어도(御道)가 연결되어 있다. 국왕만이 재궁과 연결된 어도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도로 연결된 재궁>

단순한 협문으로 국왕이 출입한다.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종묘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출입문이다.

<재궁 담장>

정면에 국왕이 출입하는 문이 있고, 양쪽에 관리들이나 실무자들이 출입하는 문을 따로 두고 있다.

<재궁 마당>

재궁 마당은 국왕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궁궐과 마찬가지로 정문에서 어재실까지 삼도로 연결되어 있다. 신도(神道)가 있는 종묘의 삼도와는 다른 개념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재실(御齋室)>

재궁 가운데에는 국왕이 하루동안 머무는 어재실(御齋室)이 있다. 어재실 월대에는 화재에 대비한 드므가 보인다. 건물은 앞면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낮은 월대위에 지어졌다.

<어재실 내부에 전시된 용교의(龍交椅)>

국왕이 사용하던 옥외용 의자로서 접어서 운반할 수 있도록 가볍게 만들었다.

<십이장복(十二章服)을 입은 국왕의 모습>

면복은 면류관과 곤복을 통칭하는 왕이나 황제의 예복으로 구장복과 십이장복이 있다. 십이장복은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태황제와 순종효황제가 국가의식에 착용하였다.

<세자재실로 이어지는 길>

세자재실과 어목욕청과는 1개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재궁 동쪽편에 위치한 세자재실>

앞면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세자나 제사를 준비하는 제관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제기도 병풍(祭器圖 屛風)>

제기도 병풍은 10폭으로 왕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집에서도 애호하던 제기를 그리고 이름을 적었다.

<모란병풍(牡丹屛風)>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며 꽃 중에 제일가는 모란 그림을 병풍을 만들어 각종 행사에 사용하였다.

<재궁 동쪽편 출입문>

향대청에서 대기하던 관리들이나 실무진들이 국왕을 보좌하기 위해서 출입하던 문으로 보인다.

<재궁 서쪽편에 위치한 어목욕청(御沐浴廳)>

임금이 목욕재계하던 곳이다. 앞면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어목욕청 내부>

다른 건물과 달리 돗자리가 깔려 있다.

<소여(小輿)>

종묘대제 때 국왕이 궁궐에서 종묘 앞까지는 대여를 타고 오며, 소여는 종묘 안에서 이동할 때 사용하던 가마이다.

<서협문을 통해 정전으로 연결되는 삼도>

<정전 동문으로 이어지는 길>

동문 주변에 수복방과 전사청 등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뒤에서 본 재궁>

재궁(齋宮)
재궁은 임금이 세자와 함께 제사를 준비하던 곳으로 어재실(御齋室) 또는 어숙실이라고 불린다. 북쪽에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무는 세자재실, 서쪽에 어목욕청이 있다. 임금과 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서문으로 나와서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