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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교장(사적), 해방직후 임시정부청사이자 백범 김구의 마지막 거처

서울 종로구 평동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옛터 부근 강북삼성병원에는 해방 이후중요한 역사적 공간이었던 경교장(京橋莊)이 있다. 경교장은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가 1945년 국내에 돌아와 임시정부의 집무실 겸 숙고로 사용한 곳이다.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이곳에서 열렸고 신탁통치반대운동과 남북협상 등도 이 경교장에서 결정, 추진하였다. 또한 경교장 2층 집무실은 김구 주석이 안두휘의 총탄에 맞아 최후를 맞이하셨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 건물은 원래 금광업자 최창학이 개인저택으로 세워 사용하다가 해방이후 임시정부 청사 및 숙소로 제공하였다. 건물은 정면 중앙 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로 대칭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균형있고 우아한 인상을 준다. 외형의 서양식 건축물을 하고 있으며, 1층은 서양식 응접실과 식당이 있으며, 생활공간이었던 2층은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지어졌다. 백범 서거이후 외국대사관저, 미군시설, 병원 등으로 사용되었다. 2005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2013년 원형대로 복원하여 해방 이후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서울 경교장(京橋莊)>

<왼쪽에서 본 모습>

해방후 중국에서 귀국한 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청사로 사용했던 곳이자,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마지막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때 부호였던 최창학이 살았던 호화주택이다. 서양식 건축물이지만 내부 생활공간은 일본식으로 꾸며졌다. 

<건물 왼쪽>

경고장 왼쪽 1층에는 임시정부 국무회의 등이 열렸던 응접실이 있고, 2층은 김구 주석이 생활하면서 집무를 보던 공간이다.

<건물 오른쪽>

오른쪽 1층은 임시정부 언론관계 및 홍보를 담당했던 선전부가 사용했던 응접실이, 2층에는 주요 인사들을 접견했던 응접실이 있다.

<현관 포치>

일제강점기 관공서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관 바깥쪽으로 튀어나온 구조물인 포치(porch)가 설치되어 있다. 

<옆쪽에서 본 모습>

<경고장 모형>

 경교장은 건축 당시 전체 면적이 5,267.44㎡(1,593.40평)에 달했다. 지금은 병원 건물과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넓은 정원과 한옥이 있었으며, 경교장 남쪽에 정문(주출입문)이, 동쪽으로 부출입문이 별도로 있었다. 또한 경교장 동쪽에는 연못.다리.차고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출처:경교장>

<현관 출입문>

<경교장 1층 구조>

중앙에 로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오른쪽에는 식당과 응접실, 왼쪽에 응접실과 욕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 응접실은 임시정부 선전부 활동공간으로, 왼쪽 응접실은 국무회의 등 임시정부의 주요 회의 들이 열렸다. 식당에서는 공식 만찬이 개최되었다.

<1층 현관 로비>

<로비 안쪽 방>

경교장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임시정부 주요 회의가 열렸던 왼쪽편 응접실로 들어가는 출입문>

<왼쪽 응접실로 들어가는 복도>

<1층 응접실>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의 대표적인 회의들이 개최되고, 김구가 국내와 주요 인사들을 접견했던 곳이다.

<오른쪽 응접실>

임시정부의 홍보 및 언론관계를 담당하였던 선전부가 활동하던 곳이다.

<응접실 내부>

<귀빈식당>

1945년 12월2일 임시정부의 공식 만찬이 개최되고, 김구가 서거했을때 빈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임시정부 인사들이 만찬을 가졌던 귀빈식당 테이블>

<귀빈식당과 선전부가 활동하던 응접실 사이의 복도>

식당이 있던 지하와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다. 벽변에 지하 주방에서 요리한 음식을 귀빈식당으로 올려보내는 음식물 반입창구가 있다.

<병원으로 사용할 당시 1층 로비의 모습>

<경교장 지하공간>

임시정부 당시 보일러실과 부엌 등으로 사용되었다.

<지하공간>

3개의 방으로 된 지하공간은 해방 이후 공간에서 임시정부와 김구의 활동을 보여주는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2층>

2층은 김구 주석이 마지막으로 생활했던 침실과 집무공간,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 및 집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백범은 2층 집무실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졌다.

<김구 주석이 생활했던 공간으로 들어가는 2층 왼쪽편 복도>

<집무 공간>

김구 주석이 머물면서 생활하고 집무를 보던 공간. 침실은 다다미가 깔려 있는 작은 방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거실(집무실)>

김구 주석이 평상시 공무를 보거나 접견 장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또한 1949년 6월26일 대한민국 육군소위이며 주안미군방첩대 요원인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한 곳이다.

<김구 주석이 돌아가신 곳>

이곳에서 김구가 1949년 6월26일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미군방첩대 요원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옛 백범기념실>

병원건물로 사용할 당시 백범 기념실이 있었다.

<복도>

2층 가운데와 오른쪽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렀던 숙소와 집무실이 있다.

<임시정부 요인 숙소>

1945년 11월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들이 환국하여 머문 곳이다. 2개의 넓은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다.

<다다미방>

경교장 외형은 서양식 석조건물이지만 내부는 다다미가 깔려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의 형태를 하고 있다.

<복도>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바깥쪽은 복도로 되어 있다.

<2층 응접실(서재)>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후 김구와 국내 정당대표들과의 회담 및 국무위원회가 개최되었던 곳이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응접실 한쪽편 벽난로>

<응접실 맞은편>

2개의 작은 방이 있다. 임시정부 당시 비서 안미생과 선우진이 사용했던 방이다.

<병원으로 사용할 당시 경교장 2층의 모습>

<강북삼성병원과 경교장>

서울 경교장(京橋莊), 사적, 1938년, 서울 종로구 평동
이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白凡 金九)의 숙소이자 환국 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다. 일제강점기 부호 최창학의 주택으로, 김구는 1945년 11월23일 환국하여 1949년 6월26일 안희의 저격을 받아 서거할 때까지 3년7개월 동안 머물렀다. 경교장 명칭은 서대문 부근에 있던 경교라는 다리에서 따온 것이다. 경교장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모여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등 해방 후 혼란정국을 수습하였다. 백범 서거 후 외국 대사관저, 미군시설,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2005년 사적465호로 지정되었다. 1.2층과 지하를 원형대로 복원하여 2013년 3월2일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출처:경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