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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보헤미아 유리] 유리장신구

1. 유리 제작 기원과 중세2. 체코의 기독교문화3. 르네상스와 매너리즘4. 바르크와 로코코5. 19세기 보헤미아 유리6. 유리 장신구7. 20세기 유리공예8. 현대 체코의 유리공예

오늘날 유리는 생활용기, 장신구, 건축자재, 첨단 전자제품 소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유리는 고대문명이 발생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16세기 이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석 등을 대체할 수 있는 장신구로서 역할을 했으며, 로마와 페르시아에서 가공기술이 크게 발달하면서 잔이나 그릇 등 고급스러운 생활용기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6~17세기에는 맑고 투명하며 가공하기에 용이한 크리스탈 유리가 만들어지면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크리스털유리를 이용한 유리장신구 가공기술은 베네치아에서 크게 발전했는데 그 기술이 보헤미아에 전해졌다. 이후 예술적, 기술적 발전과 함께 보헤미아유리는 18세기에 당시 세계 최고였던 베네치아 유리를 제치고 유럽 및 세계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19세기 보헤미아 유리를 대표하는 유리 장신구들.>

다양한 세공기술로 보석과 같은 화려한 유리공예품들을 만들어냈다.

<1.목걸이(1800년경, 북부 보헤미아 요세포포둘)>

커팅한 유리 구슬은 가운데에 구멍이 있어 꿰어 엮을 수 있었따. 초기에는 유리 파이프를 잘라 작은 원통형으로 만들었는데 19세기 말에는 기계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2.목걸이(1800~1820년, 보헤미아 이제르케호리, 불어서 압착한 유리구슬, 막대형 유리구슬)>

<3.손가방(보헤미아, 가죽,비단,금속,유리구슬)>

< 4.구두와 스타깅에 사용하는 버클 세트(1800년경, 보헤미아), 5. 담배 주머니(보헤미아, 가죽,비단,금속,유리구슬)>

3,5. 손가방과 담배주머니, 다양한 뜨개질 방법으로 식물, 기하학 문양 등을 유리 구슬로 장식한 작은 가방은 개인 용품을 소지하고 다니는 용도로써 당시 여성들의 필수품처럼 사용되었다. 유리 구슬로 만들어진 가방은 초기에 고가의 품목이었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4.구두와 스타깅에 사용하는 버클 세트, 18세기 말에는 남녀 모두 구두에 금속 버클을 장식했다. 큰 버클은 가죽 신발의 발등 부분을 조이는데 사용되었으며, 작은 버클은 스타킹을 당겨 무릎 부분에서 바지에 고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전시된 유물은 부르주아층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6.여성용 신발(1770~1795년, 보헤미아)>

값비싼 직물이나 가죽에 자수를 놓아 만들어진 신발은 당시의 미적 취향과 신던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알려준다. 가죽으로 만든 이 슬리퍼는 부르주아 계층의 여인이 신었던 것으로 안창은 말총으로 되어 있으며, 발등 부분은 식물 문양이 유리 구슬로 수놓아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북부 보헤미아 지방 야블로네츠 수공업조합에서 만든 다양한 유리장신구들>

<1,브로치와 귀걸이 세트(1871년,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 수공업조합, 유리 보석, 황동)>

야블로네츠 수공업 조합은 1666년에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야블로네츠코에서 장신구 산업이 호황을 이루었다. <출처:중앙박물관>

<2.브로치(1870~1880년,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 수공업조합, 유리보석, 유리섬유, 금속)>

<3.팔찌(1840년,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코, 진주유리, 흰색유리, 채색, 황동)>

철심에 유리 합성물을 감아 녹이면서 다양한 색상의 유리 구슬을 만드는 램프워킹 기술이 사용된 팔찌다. 까다로운 공정인 램프워킹을 이용한 제품은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1830년대에 크게 유행했다. <출처:중앙박물관>

<4.목걸이(1850~1870년, 북부 보헤미아 스모르조프카, 야블로네츠나트니소우)>

불기 기법으로 만든 유리 알은 속이 비어있어 가볍다. 이러한 유리 구슬은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서아프리카, 중부와 남아메리카 해외 시장으로 다량 수출되는 품목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5.반지(1830~1850년,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 지역, 유리보석, 황동),>

가공된 유리의 바닥에 은으로 된 반사층을 사용하여 한 층 더 빛나도록 하는 효과를 얻었다.

<6.팔찌(1870~1880년,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 수공업조합, 유리보석, 황동, 거울)>

<7.팔찌(1890년경,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코, 압착 불투명 유리, 황동)>

<8.목걸이(1880년대, 야블로네츠 수공업조합, 유리보석, 황동, 거울)>

<흑옥을 모방해서 만든 유리장신구>

1850년 이후 등장한 흑옥을 모방해서 만든 유리 장신구. 장례식 등을 위한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1.목걸이(1880~1890년, 보헤미아 알브레흐치체, 페익스 회사, 이산화망간 유리)>

흑옥을 모방해서 만든 유리 장신구이다. 흑옥 장신구는 1850년 이후에 등장했으며,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공의 사후 1861년 영국 왕실에서 애도를 위한 공식 장신구가 되었다. 흑옥을 모방한 유리는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독일을 거쳐 이제르스케호리까지 전해졌다. <출처:중앙박물관>

<2.머리 장식용 모자(1895~1905년, 보헤미아 알브레흐띠체 페익스 회사, 이산화망간 유리)>

<3.드레스 장신구(1895~1905년, 보헤미아 페익스 회사, 이산화망간 유리)>

<4.머리장식(1895~1905년, 보헤미아 페익스 회사, 이산화망간 유리, 유리구슬)>

<유리를 가공하여 보석처럼 만든 장신구들.>

<1.여성용 모자 고정핀(1890~1900년,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코 외, 유리보석, 철사, 금속)>

< 1.여성용 모자 고정핀(1890~1900년,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코 외, 유리보석, 철사, 금속)>

머리를 틀어 올리거나 땋은 뒤 모자를 엊어 이러한 핀으로 고정시켰다. 1890년대에 커다란 모자가 유행하자 한 쌍의 머리핀을 교차시켜 꽂았다. <출처:중앙박물관>

<2.브로치와 펜던트(1880~1910년대,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코 수공업조합)>

<3.벨트버클(19세기말, 보헤미아)>

<4.꽃모양 브로치(1910년경, 북부 보헤미아 야블로네츠나트니소우, 커팅 유리, 금속)>

<5.여성 드레스 장식(1910년경, 보헤미아, 유리보석, 금속)>

<19세기 상업적으로 활발하게 거래된 유리공예품들>

<1.브로치(1870~1890년, 보헤미아 야블로네츠 수공업조합, 압착유리, 금속)>

꽃과 포도 모양, 카메오 기법으로 만든 사람의 옆모습이 장식된 브로치이다. 압착 기술이 사용되었는데, 불에 달궈진 유리 혼합물을 금속 틀에 찍어 모양을 얻었다. <출처:중앙박물관>

<2.브로치세트(1845~1855년, 북부 보헤미야, 압착 커팅한 이산화망간 유리와 흰색유리, 황동)>

<3.유리단추 모음집(1885~1886년, 북부 보헤미아)>

파리, 런던, 베를린 등지에 지사를 두었던 야코프 예이에텔레스 손 회사의 단추 견본 모음집으로 이러한 고가의 단추는 램프워킹과 같은 고난도의 유리 기술과 금박이나 금을 채색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출처:중앙박물관>

<4.의상장식 – 아플리케(19세기 후반, 북아메리카 수Sioux 부족)>

<5.목걸이(1890~1910년, 남아프리카 호사 부족)>

보석을 모방하여 만든 유리구슬로 만든 전통 장신구이다.

작세회사(A Sachse & Co)는 무역 중계망을 통해 시장 수요를 파악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 시장에 진주, 유리알 등을 수출했고, 교역을 통해 얻은 재료로 모방한 유리 구슬을 생산했다. <출처:중앙박물관>

<19세기 체코 귀족들이 사용했던 주요 장신구>

<다이아몬드 장신구 세트(팔찌, 브로치, 귀걸이 1866년경, 오스트리아, 금, 다이아몬드, 검은색 에나멜, 벨벳, 가죽, 나무)>

1864년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엘리자베스 황후에게 다이아몬드가 밝힌 별 모양의 머리장식을 선물했다. 이 모티프는 많은 장신구에 응용되었고, 이 작품도 그 중 하나로 작지만 정교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금장신구 세트(귀걸이, 목걸이, 벤야민 브루너, 1867~1872년, 프라하, 금, 가죽, 나무, 벨벳)>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잘랐다고 전하는 전설적인 고르디우스 매듭을 모티프로 한 장신구이다. 이 매듭은 풀 수도 없고 끝도 없는 매듭이어서 영원한 서약을 상징하며, 따라서 이러한 모티브를 사용한 물건은 평생의 약속을 맹세하는 선물로 제작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머리장식(1870~1890년 경, 보헤미아, 체코 석류석, 거북 등딱지, 금과 구리 합금), 머리장식(19세기 후반, 보헤미아, 체코 석류석, 거북 등딱지, 금과 구리 합금),머리장식(1891년, 프라하, 체코 석류석, 거북 등딱지, 금)>

머리장식(왼쪽), 체코 석류석은 왕관 모양의 머리 장식에 주로 사용되었다. 석류석은 작고 검붉은 돌로 중세 초기부터 보석 세공사들은 우수한 강도와 내성, 빛나는 색채 때문에 석류석을 선호했다. 이 장식에는 머리에 꽂을 수 있도록 빗을 달았다. 머리장식(아래쪽), U자모양의 헤어핀으로 여자의 머리를 고정하거나 장식하는데 사용했다. 제품의 크기가 다양해서 어린이를 위한 작은 것도 있었으며, 브로치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다. 머리장식(왼쪽),1891년 프라하 만국박람회에서 전시되었던 석류석 작품 14점 중 하나이다. 이 머리 장식의 중앙부는 크기가 1cm 정도의 비교적 큰 석류석으로 장식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얀 레이만이 회사에서 체코 석류석으로 만들었던 장신구들>

1880년대 초부터 대형 회사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석류석 장신구들이 대량 생산되었다. 그 중에서도 얀 레이만의 회사는 프라하를 기점으로 체코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 등지에도 진출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바구니(1890~1914년, 프라하, 얀 레이만 세공, 투명유리, 체코 석류석, 귀석류석, 금속, 도금, 커팅)>


<화병(1880~1914년, 프라하, 얀 레이만 세공, 토명유리, 체코 석류석, 귀석류석, 금속, 도금, 커팅)>

<마개가 있는 병(1880~1914년, 프라하, 얀 레이만 세공, 투명유리, 체코 석류석, 금속, 금, 커팅)>

<다리가 있는 접시(1880~1914년, 프라하, 얀 레이만 세공, 투명 유리, 체코 석류석, 금속, 도금, 커팅)>

<부유층의 저택을 장식하던 공예품.>

<전원생활이 그려진 커피잔 세트(1820년경, 보헤미아 슬라브코프, 도자기, 채색, 도금)>

유리나 자기로 된 찻잔 세트는 19세기 실내공간을 장식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 부유층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간인 살롱에 부를 과시하기 위한 장식품들을 전시했다. 이러한 세트는 오찬 등의 사교 모임에서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사랑에 빠진 늙은 여인 상(1850년경, 독일 작센, 마이센, 도자기에 채색)>

역사주의는 공예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이 도자기 조각은 젊음을 사랑한 나이 든 여인과 재산을 노려 접근한 젊은 남자 간의 애정을 주제로 제작되었다. 풍자를 통해 교훈을 전달하는 이러한 장식품은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1708년에 설립된 유럽 최초의 독일 마이센 도자기는 당시 값비싼 동양 도자기를 대체할 만한 도자기를 적절한 가격에 공급했다. <출처:중앙박물관>

<머리장식(펠리페 파스트, 1815~1830년경, 프라하, 도금한 황동, 검은색 뿔, 홍옥수)>

프라하의 상류층 여인들이 사용했던 머리 장식이다. 이 시기의 머리 장신구는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더 당대의 취향을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탁상용 시계(1810년경, 보헤미아, 나무, 금, 유리, 금속)>

독수리가 시계를 문 형태의 이 시계는 전형적인 제국 양식을 보여주며, 중부 유럽에서 인기리에 생산되었다. 시계의 중심부에는 화살을 만들고 있는 큐피드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시리용적이면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닌 이러한 시계는 대대로 전해졌고 19세기에는 부유층의 살롱을 장식하기도 했다. <출처:중앙박물관>


<꽃장식과 풍속화가 있는 화병(1835~1850년경, 보헤미아 슬라브코프 지역으로 추정, 도자기, 채색, 도금)>

부피가 크고 화려한 이 화병은 부유한 귀족층의 저택과 궁정을 장식했다. 후기 로코코 양식이며, 사랑에 빠진 연인과 충성스러운 개가 표현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유리 장신구 
보헤미아의 유리 장신구는 베네치아에서 전해진 보석 세공 기술과 관련이 깊다. 값비싼 보석을 대체하고자 18세기 초반에 유리를 보석처럼 세공하기 시작했는데, 18세기 중반부터 야블로네츠나트니소우 지역이 그 중심지가 되었다. 유리 구슬은 장신구의 재료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유리 단추와 더불어 중요한 수출품이기도 하였다. 야블로네츠나트니소우의 유리 보석 장신구는 높은 기술 수준과 넓은 판매망을 갖추고 소비자의 취향과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19세기 중반에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