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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보헤미아 유리] 19세기의 보헤미아 유리

1. 유리 제작 기원과 중세2. 체코의 기독교문화3. 르네상스와 매너리즘4. 바르크와 로코코5. 19세기 보헤미아 유리6. 유리 장신구7. 20세기 유리공예8. 현대 체코의 유리공예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과 크리스털 유리 가공기술을 발전과 함께 베네치아를 제치고 보헤미아는 유럽 유리공예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대였던 19세기에는 보헤미아유리공예에는 다양한 예술사조들이 영향을 주었으며, 세공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양식의 유리제품이 만들어졌다. 또한 중산층의 확대와 함께 귀족 취향 중심이었던 바로코와 로코코양식과는 달리 실용적이면서도 서민적인 양식의 유리공예가 발전하면서 유리제품들은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또한 보헤미아 각지의 유리공방들은 점차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기업체로 변신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크르시탈 유리 제품으로 명성을 떨치는 오스트리아의 스와브로스키가 설립된 시기이기도 하다.

<19세기 유리공예품들>

19세기 유리공예가 산업화되어가던 시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양식과 형태의 유리공예품들이다.

<통모양의 그릇(1835~1840년경, 남부 보헤미아 이르지코보우들리, 마노 유리, 도금, 커팅)>

1830년대에 마노 유리는 인기가 있었다. 유리 자체에 색을 넣어 자수정, 오팔, 마노 등 천연석을 모방했다. 남부 보헤미아 부쿠오이 백작의 유리 공방에서 주로 생산했다. <출처:중앙박물관>

<마개가 있는 병(1820~1840년, 북부 보헤미아 블레브스코, 프리드리흐 에게르만, 리티알린, 도금, 커팅), 마개가 있는병(북부 보헤미야 블레브스코, 프리드리호 에게르만 공방으로 추정, 리티알린, 커팅), 잉크병 세트(1835~1837년, 남부 보헤미아 이르지코보우돌리 혹은 스트르지브로니브르흐, 녹황색 리티알린, 커팅)>

마개가 있는 병(왼쪽), 작은 향수병은 비더마이어 양식의 생활용품 중 대표적인 것이며 주로 선물용으로 선호되었다. 마개가 있는병(가운데), 돌을 뜻하는 그리스어 리토스에서 명칭이 유래된 리티알린 유리는 커팅한 유리에 착색제를 발라 가마에 구운 것이다. 유리 표면에 나타난 아름다운 마블링이 마치 보석같았다. 1824년 프리드리흐 에게르만은 리티알린 생산품으로 유리 기술 특허를 냈다. <출처:중앙박물관>

<주기도문을 새긴 잔(1840년 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야블로네츠나트니소우, 안톤 심의 세공으로 추정, 투명 유리, 커팅, 조각), 초상이 있는 잔(1840~1850년대,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도미니크 비에만 조각, 투명유리, 붉은색 착색제, 커팅, 조각)>

주기도문을 새긴 잔(왼쪽), 비더마이어 시기에 주기도문은 종교적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처럼 복잡한 기술로 제작한 잔은 주기도문을 새긴 잔 중에서도 고가품이었다. 앉아있는 성부와 그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천사가 새겨져 있으며, 나머지 부분에는 주기도문 내용에 해당하는 일곱 장면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초상이 있는 잔(오른쪽), 유리 초상 조각으로 유명했던 도미니크 비에만이 조각하였다. 그는 실제 인물을 보며 작업했는데 이는 프라하 응용미술학교 교육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의 인물조각은 해부학적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병과 잔(1840년 경, 북부 보헤미아, 투명유리, 붉은색 유리, 금, 커팅).>

고난도의 커팅 기술이 사용된 작품으로 금으로 그려진 문양이 두드러진다. <출처:중앙박물관>


<마개가 있는 병(184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파란색 오팔 유리, 커팅)>

투명한 유리와 파란색 유리를 결합한 후 커팅 기법으로 깎아내어 장식하였다. 여러가지 기술을 결합하여 유리제품을 만드는 것은 비더마이어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꽃무늬 주전자(1845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녹색 오팔 유리, 에나멜, 금, 은 불기)>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꽃무늬와 녹색의 오팔 유리가 돋보인다.

프랑스의 후기 로코코 양식을 보여주는 주전자이다. 보헤미아에서는 1830년대부터 1860년대에 유행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3단 쟁반(184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노란색 우라늄 유리, 커팅, 조각).>

지금도 서양식 고급 음식점 등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준다.

황색과 녹색의 우라늄 유리로 만든 제품은 큰 인기를 얻었는데, 1839년부터 노비스베트의 하라흐 유리 공방이 생산을 주도했다. <출처:중앙박물관>

<그릇(1845년경, 보헤미아, 파란색 오팔 유리, 은)>

은으로 넝쿨무늬를 그려넣은 이 그릇은 후기 로코코 양식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유리 보석이 장식된 잔(1830년대, 북부 보헤미아 뽈레프스쿠, 프리드리흐 에게르만 공방, 리티알린, 도금, 커팅), 뚜껑이 있는 잔(1830년, 남부 보헤미아 이르지코보우돌리, 붉은 옥적석 유리, 금, 은), 온천 여행 기념 잔(1834년,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리티알린, 노란색 착색제, 커팅, 조각)>

뚜껑이 있는 잔(가운데)옥적석 유리로 만든 음료 및 화장용기 세트, 화병, 잉크병, 설탕 그릇 등은 실용적이면서 장식적이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온천 여행 기념 잔(왼쪽),1830년대에 치유 효과로 인기를 얻었던 모라비아 지방의 카를로바 스루단카 온천을 방문한 사람들이 기념으로 구입한 것이다. 노란색 착색제를 이용한 리티알린 유리로 제작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중국풍 장식이 있는 향수병과 통(1830~1840년대, 남부 보헤미아 노베흐라디, 이르지코보우돌리, 검은 옥적석 유리, 금, 커팅). 잔과 잔받침(183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혹은 보헤미아, 검은 옥적석 유리, 금, 커팅)>

당시 유럽에서 인기가 많았던 중국 도자기를 모방해서 만든 유리제품이다.

중국풍 장식이 있는 향수병과 통(앞쪽), 제국 양식에서는 천연 준보석을 선호했는데, 이는 불투명한 유리의 일종인 옥적석 유리제품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흑요암 또는 영국 웨지우드의 제품 중 흑자기를 모방한 것이다. 1820년대 중반의 중국 칠기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중국풍으로 장식되었다. 잔과 잔받침(뒷쪽), 검은 옥적석 유리로 만든 제품들 중에서는 주전자, 설탕그릇, 잔과 잔받침이 있는 세트가 대표적이다. 중국풍의 영향으로 기하학적 장식이 금으로 채색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실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유리공예품>


<받침이 있는 병 세트(1825~1830년, 남부 보헤미아 이르지코보우돌리, 붉은 옥적석 유리, 황동, 커팅)>

1819년 노베 흐라디의 이르지 부쿠오이 백작이 붉은 옥적석 유리를 개발하였다. 옥적석 유리로 제작된 이 병 세트는 화장수를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유행한 프랑스 양식에 따라 작은 주철 스탠드를 끼웠다. <출처:중앙박물관>

<원형 부조가 장식된 잔(1836~1840년, 남부 보헤미아 아돌포프우빔페르크, 투명유리, 붉은색과 코발트색 유리, 노란색 착색제, 커팅), 마개가 있는 병(1835년경, 북부 보헤미아 보르/남부 보헤미아 아돌포프우빔페르크, 투명유리, 노란색 착색제, 유색 광택제, 커팅)>

원형 부조가 장식된 잔(왼쪽), 여섯 면으로 이루어진 잔에 돌출된 원형 장식이 있고, 1830년대 중반에 인기가 높았던 보라색 착색제를 이용해 제작했다. 마개가 있는 병(오른쪽), 비더마이어 시기에는 유리의 색을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착색제를 사용하였다. 투명하게 연마한 유리 위에 붓으로 착색제를 칠하고 가마에서 구워 제작하였다.

<유리병과 잔(1830년대, 남부 보헤미아 아돌포프우빔페르크, 요한 메이르로 추정, 투명유리,노란색 착색제, 유색 광택제, 커팅, 조각)>

비더마이어 시기의 병과 잔 세트로 반복되는 원형 장식에는 프라하 유적의 모습과 설명이 함께 담겨 있다. 아칸서스 잎 모양의 노란색 장식은 검은 착색제를 바른 부분과 대조를 이루며, 바닥은 정밀한 보석 커팅 방식으로 처리했다. <출처:중앙박물관>


<유리병과 잔(1780~1790년, 북부 보헤미아, 투명유리, 금, 커팅)>

고전주의 시대에는 섬세한 조각 장식이나 고대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화환무늬 또는 소유자의 모노그램을 새긴 원형 장식이 있는 원통형 유리병이 많이 제작되었다. 단순한 형태에서 이전의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과 차이를 보인다.

<고기잡이 장면이 장식된 잔(1800년 이후, 동부 보헤미아, 투명유리, 커팅, 조각), 잔(1802년, 남부 보헤미아 스트르지브르니브르흐, 투명유리, 커팅, 조각).모노그램과 기념비가 있는 잔(북부 보헤미아, 투명유리, 커팅, 조각).인간의 생애를 새긴 잔(1820년경, 북부 보헤미아 카메니츠키셰노프 지역, 투명유리, 커팅, 조각)>

고기잡이 장면이 장식된 잔(왼쪽). 잔(가운데), 사각형 받침이 달린 잔에 모노그램이 있는 원형 장식과 정교하고 섬세한 꽃무늬를 장식하였다. 양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고전주의와 제국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모노그램과 기념비가 있는 잔(가운데 ). 고전주의와 제국 양식 시기에는 오벨리스크나 소유주의 이니셜을 새긴 원형의 장식을 섬세하게 새진 잔이 많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생애를 새긴 잔(오른쪽). 출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전 생애를 12단계로 나누어 피라미드식으로 구성했다. 중앙 하단부에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모래시계를 중심으로 왼쪽에 세례를 받으로 가는 모습, 오른쪽에는 관을 묘지로 옮기는 모습을 묘사했다. <출처:중앙박물관>

<우유 주전자와 받침(1830년경, 남부 보헤미아 스트르지브르니브르흐 유리작업장, 투명유리, 커팅)>

주전자의 둥글고 우아한 형태는 당대의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단순하지만 섬세하게 마감된 장식이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비더마이어 시기 체코의 저명한 작곡가 바츨라므 얀 토마셰크의 소장품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프라하 풍경이 장식된 잔(1830~1840년경, 보헤미아 노비보르, 프리드리히 에게르만 공방, 투명유리, 금, 커팅). 황제와 황후 초상이 장식된 잔(1831년 이후, 북부 보헤미아 플레프스코, 프리드리히 에게르만의 몽방, 투명유리, 채색, 금, 커팅)>

프라하 풍경이 장식된 잔(왼쪽). 프라하 및 여러 도시의 전경을 그린 기념 유리 제품이 당시 인기가 있었다. 이 잔의 그림은 프라하의 전경 화가 빈센츠 모르스타트의 화보집을 따라 그린 것이다. 황제와 황후 초상이 장식된 잔(오른쪽).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프란츠 요세프 1세와 황후 카를리네 우우그스테의 초상화로 장식된 한 쌍의 세트이다. 이러한 제품은 대관식, 국빈 방문 등 여러 국가적인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설탕그릇(1850년 이후, 보헤미아 이흘라바, 후고볼프, 유리, 은 아말감 도금, 흰색 무광 채색)>

거울과 같은 표면을 가진 이러한 유리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장식 용품에 사용되고 있다. 이 유물은 다양한 색의 그림으로 표면이 장식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잔(185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무색유리, 우윳빛 유리, 루비색과 코발트색 유리 섬유). 마개가 있는 병(185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흰색과 루비색 유리섬유, 핫워킹)>

잔(왼쪽). 우윳빛 유리에 투명한 유리를 덮고, 루비색과 코발트색 유리 섬유를 가닥으로 말아 나선형으로 둘러 만들었다. 마개가 있는 병(오른쪽). 1840년대와 50년대에 노비스베트에서 제작된 후기 로코코양식의 유리에서는 베네치아식 세공 기술을 이용한 장식도 발견된다. 몸체에는 흰색의 유리 섬유로 나선형 장식을 하였고 흰색과 루비색 유리 섬유를 사용한 날개 모양의 손잡이가 측면에 있다. 표면에 금으로 세말하게 그림을 그렸다. <출처:중앙박물관>


<음악가의 초상이 그려진 맥주잔(1850~1860년대,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흰색 불투명 유리, 에나멜, 금)>

이 맥주잔은 여러 양식이 복합적으로 사용되었다. 당대의 의상을 입은 바이올린 연주가와 꽃다발이 그려진 원형 장식이 있는 흰색 불투명 유리층은 후기 로코코 양식을 대표한다. 한편 삼엽문과 뚜껑 손잡이는 고딕양식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다양한 빛깔과 섬세한 세공기술을 보여주는 유리제품들>

< 엠블럼이 있는 잔(19세기 후반, 보헤미아, 투명유리, 붉은색 착색제, 커팅, 조각). 엠블럼이 있는 잔(1840~1850년,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노란색 착색제, 커팅, 조각).  테플리체의 명소를 새긴 잔(1840년경, 북부 보헤미아 테플리체, 투명 유리, 노란색 착색제, 커팅, 조각)>

 엠블럼이 있는 잔(왼쪽). 믿음, 희망, 사랑, 건강, 행운, 즐거움 등의 엠블럼이나 선물하는 사람의 이니셜 등을 새긴 유리 잔이 당시 선호되었다. 엠블럼이 있는 잔(가운데). 가족, 친구, 동료들 간에 주고 받는 선물용 유리 제품이 유행하였다. 구매자들은 건강, 사랑, 신뢰, 조화, 근면, 만족, 즐거움 등을 상징하는 문구가 장식된 선물을 선호했다. 테플리체의 명소를 새긴 잔(오른쪽). 북부 보헤미아의 테플리체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 중 하나였다. 이 잔은 12개의 원형 장식 안에 테플리체 인근의 명소가 독일어 명칭과 함께 새겨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인물 초상이 장신된 통(1840년 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도자 상감, 커팅). 성모자상이 있는 스탠드(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도자상감, 조각)>

인물 초상이 장신된 통(왼쪽). 통치자, 장군, 작곡가, 철학자 등 유명한 사람의 초상을 도자 상감으로 표현하는 것도 인기가 있었다. 병, 잔, 마개, 뚜껑이나 인장 등에도 이러한 기법이 사용되었다. 성모자상이 있는 스탠드(오른쪽). 도자 상감 기법으로 성모자상을 표현한 제품이다. 노비스베트 유리 공방은 프랑스, 영국 등에 이어 182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제품을 생산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양풍 장식이 있는 잔(1890년 경, 북부 보헤미아 보르, 유리전문학교, 투명 유리, 에나멜, 금)>

1871년에 설립된 보르 유리전문학교는 인근의 북부 보헤미아 유리 작업장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개성있는 도안을 제공했다. 특히 동양적인 모티프의 수요가 많았는데, 아라비아, 인도, 페르시아의 문양을 차용했고 이후에는 중국과 일본의 요소를 더했다. <출처:중앙박물관>

<프란티셰크 마레시의 생일기념 잔(1890년,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커팅, 조각). 사냥 장면이 장식된 잔(1896년, 보헤미아 돌니플루브니, 요세프 리에델 유리 작업장, 투명유리, 투명한 녹색 유리, 에나멜, 금). 엠스 온천 문양이 그려진 잔(1850~1870년, 북부 호베미아 노비보르, 프리드리흐 에게르만 유리 공방으로 추정, 투명유리, 붉은색 착색제, 불기, 커팅, 조각)>

프란티셰크 마레시의 생일기념 잔(왼쪽). 이 크리스털 잔은 유리 사업가 하라흐가 자신의 가문에 대한 연구를 도왔던 기록 관리사이자 역사가 프리티셰크 마레시의 생일 선물로 제작한 것이다. 잔에는 하라흐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사냥 장면이 장식된 잔(가운데). 요세프 이에델의 유리 작업장은 호화롭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다양한 기형과 기법의 유리로 유명했다. 전통적인 독일 양식의 잔에 여우 사냥 장면을 에나멜로 그렸고, 투명 유리로 된 긴 손잡이에는 나선 모양의 장식을 했다. 엠스 온천 문양이 그려진 잔(오른쪽). 엠스에 있는 황제의 온천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잔이다.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천 중 하나로 19세기에는 전 유럽의 귀빈들이 온천을 방문할 정도였다. 붉은색 착세제를 바른 유리에는 온천의 경관과 로코코 양식의 장심 및 포도 잎사귀가 새겨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새그림이 있는 화병(1880~1890년, 북부 보헤미아 돌티플루브니, 요세프 리에델 유리작업장, 흰색 불투명 유리, 도금, 에나멜)>

<로코코 양식의 접시(1889년, 북부 보헤미아 돌니플루브니, 요세프 리에델 유리 작업장, 흰색 오팔 유리, 푸른색 오팔 유리, 금). 꽃그림과 로카이유 장식이 금으로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화병(19세기 후반, 북부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흰색 불투명 유리, 금)>

장식용 화병 입구의 가장자리가 튤립을 연상시킨다. 투명한 유리는 흰색 불투명 유리와 대비되며, 잎사귀 모양과 격자 무늬로 세공되었다. 화병의 투명한 표면 위 후기 로코코풍의 금빛 잎사귀 문양이 풍위 있다.

뚜껑이 있는 잔(1857년,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붉은색 유리, 금, 커팅)
노비스베트에 있는 북부 보헤미아 유리 공방의 주인이었던 얀 하라흐 백작이 새로 문을 연 분교의 감독관 안토닌 스트란스키에게 선물했던 잔이다. 그릇의 형태와 섬세한 금빛의 그림은 동양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잔 내부에는 향수병과 연고통이 있었다.

<달리는 말이 그려진 잔(185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와 케메니츠키세노프, 카렐 포흘 작품으로 추정, 무색 유리, 코발트색 유리, 부분 무광, 커팅), 달리는 말이 그려진 잔(185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와 케메니츠키세노프, 카렐 포흘, 무색 유리, 흰색 불투명유리, 코발트색 유리, 부분 무광, 도금, 커팅)>

이 잔은 카메니츠키셰노프 지역에서 활동했던 저명한 조각가 카렐 포흘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주로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프랑스작가 오노레 도미에와 귀스타브 쿠르베의 도안을 바탕으로 한 달리는 말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개가 새겨진 잔(1850~1860년,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 루비색 유리, 커팅, 조각), 잔(1850~1860년, 북부 보헤미아 지역의 보니스베트, 투명유리, 코발트색 유리, 커팅, 조각)>

개가 새겨진 잔(왼쪽), 잔의 옆면에는 붉은 아칸서스 잎 모양의 부조 장식이 있고, 그 사이로 뛰어다니는 개가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중반에 많이 제작된 형태이며, 장식적이고 익살스러운 디자인에서 후기 로코코 양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잔(오른쪽). 잔의 윗부분은 부조로 새긴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랫부분의 손잡이는 청색과 흰색의 유리 섬유를 나선형으로 둘러서 장식했다. <출처:중앙박물관>

<화려한 빛깔과 무늬,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19세기 보헤미아 유리>


<마개가 있는 병(1850년경, 북부 보헤미아, 투명유리, 흰색 불투명 유리, 분홍색 불투명 유리, 에나멜, 커팅)>

로코코 시대에 다양한 색채를 선호했던 경향은 유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투명하거나 밝게 채색된 유리를 흰색 유리로 덮어 층을 만든 후 커팅으로 장식 효과를 주었다. 밝은 에나멜이나 금으로 꽃 문양을 그리기도 했다. <출처:중앙박물관>


<화병(185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녹색 유리, 흰색 불투명 유리, 에나멜, 도금)>

녹색 유리 위에 흰색 불투명 유리를 덮어 커팅한 후 그 위에 에나멜로 꽃 문양을 그려 넣었다. 깎은 면의 가장자리에는 도금 장식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터키 의상을 입은 소녀가 그려진 화병(1860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무색 유리, 붉은색 유리, 흰색 불투명 유리, 에나멜, 금)>

표면에 도금된 작은 잎사귀 문양은 1860년대 노비스베트의 유리 공방에서 제작된 제품의 특징이다. 중앙의 원형 장식에는 보석으로 장식하고 터키식 터번을 두른 소녀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초상화 모티프는 주로 잡지의 삽화나 유명 회화를 본 따 그린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문장이 장식된 잔(1870~1890년,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페트로 추정, 투명 유리, 붉은색 유리, 금, 에나멜, 핫워킹)>

전통적인 독일 양식의 잔에서 사용했던 녹색 유리를 붉은색 유리로 대체하였고, 가문의 문장을 다양한 에나멜 그림으로 장색했다. <출처:중앙박물관>


<남녀가 그려진 잔(1870년경, 보헤미아, 녹색 유리, 에나멜, 핫워킹)>

다양한 색의 에나멜로 식물 무늬를 그리고, 중앙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을 입은 남녀를 묘사하였다. 이 맥주잔에서 16,17세기 독일 르네상스 유리의 형태와 장식을 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대 인물이 그려진 화병(1865년,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흰색 불투명 유리, 무광 에나멜, 금, 전사 기법), 병과 잔(1865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흰생 오팔 유리, 에나멜, 금)>

고대 인물이 그려진 화병(뒷편), 흰색 불투명한 유리로 제작되었으며, 고전.고대의 부할을 표방한 신고전주의 양식을 보여준다. 이 화병에는 무장한 전사와 베스타여신의 여사제가 전사(傳寫, decal)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병과 잔(앞쪽), 흰색의 불투명한 유리로 된 음료 용기 세트는 고대 문명을 상기시키는 문양이 있는 검은 띠가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제품은 1860년대 중반에 노비스베트의 유리 공방에서 주로 제작되어 영국에 수출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19세기의 보헤미아 유리
19세기의 보헤미아 유리에는 유럽의 다양한 예술 사조가 영향을 주었다. 19세기로 접어들어 합리적 질서에 바탕을 둔 고전주의 양식이 영향을 미쳤고, 이후 나폴레옹 1세 시기의 제국 양식은 기하학적 모티프를 도입하면서 그릇 형태에 있어서도 새로움을 추구했다. 시민계층의 성장에 힘입어 비더마이어라는 실용적인 시민 양식도 발전하였다. 보헤미아 유리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유럽 시장이 봉쇄되면서 판매가 줄어들었으나, 다양한 세공 기술을 발전시켜 세계 시장에서의 위치를 회복해 나갔다. 천연 원석이 지닌 광택을 모방한 리티알린과 마노 유리가 제작되었고, 착색제와 광택제 등을 이용하여 다양한 색과 효과를 내는 기법도 개발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옛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역사주의 양식이 영향을 끼쳤다. 네오 고딕, 네오 르네상스, 네오 클래식 풍의 디자인이 유행하였고, 전통적인 기법이나 동양적 모티프를 이용한 제품들도 제작되었다. 한편 카메니츠키세노프에는 세계 최초의 유리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